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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소금란 개인전
금란話 (햇빛에 감하고 손이 응하다)
2024.5.18(토) ~ 5.3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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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전언, 소금란 작가의 ‘금란話’
 
                                                                                                                                                                                                                                                                       글 : 최연하(사진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소금란 작가의 신작, ‘금란話’는 햇빛에 감(感)하고 손이 응(應)하여 탄생한 사진-그림이다. 빛의 입자인 포톤(photon)이 감광유제를 만나 푸른 무늬를 만들면 소금란 작가는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광화학적인 사진적 과정과 회화적인 그리기 즉, 빛과 감광유제, 손과 붓과 물감의 조합이 ‘금란話’이다. ‘금란’의 말(話), ‘금란화’는 ‘포토-그라피photo-graphy’라는 단어의 의미와 성향을 갖는다. ‘photo(빛, 태양, 신, 자연)’와 ‘graphy(글쓰기, 소묘, 묘사, 문화)’의 합성어처럼, 작가 이름자인 ‘금란’과 ‘화(話, 畵)’가 결합해 ‘금란의 메시지’ 혹은 ‘금란이 그린 그림’이 되었다. 자연과 문화가 결합한, 처음부터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 만나 형성된 ‘포토그라피photography’라는 단어를 살피면서 ‘금란화’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사진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재현(representation)한 것이라면 ‘금란화’는 사진적 현현(presentation)에 상상을 더해 회화적 운치가 짙은 작품이 되었다. 실재하는 대상에 닿은 빛의 흔적이 시아노타입 사진이 되었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기에, ‘금란화’는 세계의 그림자인 동시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세계와 작가를 이어주는 확실성의 끈이고 결이고 색이다.
 
대학시절에 도예를 전공한 탓인지 소금란의 작품에는 ‘손’의 노동으로 집적된 무늬가 유독 부드럽고 선명하다. 대부분 시아노 타입(cyanotype) 프로세스에서 자외선 영사기로 빛을 쪼인다면, 소금란 작가는 햇빛에 직접 노광을 한다. 아르쉬지 수채화 종이에 시아노 용액을 입혀 주로 꽃과 식물을 종이 위에 올린 후, 햇빛을 쪼이는 과정에서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거나 손으로 문지르니 포토그램(photogram)의 즉흥성과 우연성도 증폭되었다. 포토그램은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사진이어서 에디션이 불가하다. 카메라 없이 사진을 만들 수 있고, 사진에 담긴 피사체의 크기와 실재 대상의 크기가 같기에 생생함은 더해진다. 분명히 존재했던 대상에 닿은 빛의 흔적으로서 포토그램의 인덱스성(물리적 흔적)이 미학적 가치를 획득하는 이유도 세상에 단 하나인 이미지라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꽃과 식물이 사진 위로 올라와 꿈꾸듯 부드러운 춤을 춘다. 땅에 뿌리를 내렸기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은 ‘금란화’ 속에서 광합성을 한다.
 
‘포토그라피photography’라는 단어가 세상에 아직 없었을 때, 초기 사진 발명가들의 이 ‘떠도는 이미지’를 향한 열망을 살펴보면 지금도 유효한 사진의 본령과 사진에 거는 기대, 사진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니에프스는 사진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자연 경관을 복사하는 것” 또는 “충실한 자연의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다게르는 조금 더 명확하게 “카메라 옵스쿠라에 의해 반사된 자연의 영상을 자동 복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자연의 효과”, “자연의 완전한 형상”, “자연의 인상”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영국의 또 다른 사진 발명가 탈보트는 “자연 화학의 무한한 힘”에 의해 “영향받고”, “흔적이 남겨진”, “그림”이자 “소묘”라고 말한다. 발명가들의 사진 사랑은 자신의 발명품을 명명할 때 도드라진다. 니엡스는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태양의 그림)’, 탈보트는 ‘칼로타입(Calotype, 아름다운 그림)’이라 했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소금란 작가는 시아노 타입(cyanotype)으로 형성한 사진 위에 그리는 행위를 더해 만든 세상에 단 하나인 작품을 ‘금란화(話)’라 명명한다. ‘금란화’는 니엡스와 다게르와 탈보트가 언급한 사진의 특성과 가능성이 모두 잠재된 기법이다. ‘자연의 인상, 흔적이 남겨진 그림’이 바로 ‘금란화’인 것이다.
 
시아노 타입에 대한 흥미로운 특성을 살피며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시아노 타입(cyanotype) 과정에서 생성된 청색소를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라고 하는데 물감의 청색 안료로 널리 쓰이고 청사진을 제작할 때도 사용된다고 한다. 이 염료의 특별한 점이 또 있는데 바로 ‘방사성 물질의 해독제’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프러시안 블루는 “독성이 없으면서 세슘 등 중금속들과 잘 결합하여 배출되므로 방사성 세슘과 탈륨 중독의 해독제로 널리 사용된다. 체르노빌 사태 등 중증 방사선 오염 때 치료제로 단골로 등장한 물질이 프러시안 블루”라고 한다. 금란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소금란의 작품들은 지구상에 자라는 풀들과 꽃들의 서식지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과 식물의 공생과 공존에 대한 ‘청색 신호’이고 태양이 지구에 띄운 ‘빛의 언어’이다. 곧 사진이 될 존재를 손으로 어루만지고 수분을 공급하고 몇 번을 닦아내고 칠하고 그리기를 반복해 사진 속에서 영원히 광합성을 이어가게 하는 것. 금란화의 아름다운 생태 의식이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작가와 세계가 입자와 파동으로 감응(感應)하며 접촉하는 가운데 탄생한다. 반복하면, ‘금란話’는 햇빛에 감(感)하고 손이 응(應)하여 탄생한 사진-그림이다.